'보리의 바다에 가라앉는 열매'가 리세의 중학교 얘기를 다루고 있다면, 이 책은 고등학교 때 일어난 사건을 다루고 있다. 그래서 그녀의 회상 속에서 전작에서 보았던 반가운 이름을 만날 수 있다.
리세는 보통 평범한 아이로 생각하면 안되는 인물이다. 전작에서도 나이는 중학교 2학년이었지만, 생각하는 것이나 행동하는 것은 이미 그 또래를 넘어섰다. 게다가 살짝 드러난 그녀의 앞으로의 길도 그리 평탄할 것 같지 않았다.
이 책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이제는 명확히 드러난 그녀가 앞으로 걸어가야할 길은 보통 아이들이 감당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과연 이런 집안이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 정도였다. 그래서인지 리세는 더 조용하고 생각이 많아졌으며 남에게 마음을 여는 법이 거의 없었다. 아니, 남에게 관심도 주지 않는 듯 했다. 그냥 모든 것을 무심히, 서늘한 눈빛으로 조용히 입을 다물고 빤히 바라보고 있을 뿐이다.
'도서실의 바다'였던가? 온다 리쿠의 단편집에서 리세의 어린 시절 이야기가 실린 것이 기억난다. 거기에 그녀와 같이 사는 사촌 오빠, 미노루와 와타루가 나왔었다. 이번에 그 두 소년은 훌쩍 큰 모습으로 등장한다. 미노루는 날카로운 남자가 되어 있었고, 와타루는 유쾌한 청년으로 변해있었다.
책장을 덮으면서 가볍게 한숨이 나왔다. 리세는 평범하게 살기엔 그른 아이구나. 그녀의 주위에는 빛 아니면 어둠만이 존재하는 것 같았다. 그녀가 속한 어둠의 세계와 그녀가 존재하고 있는 '척' 해야할 빛의 세계. 어린 나이에도 그녀는 균형을 맞추면서 아슬아슬하게 살아남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아차!'하는 순간에 끝이 없는 바닥으로 떨어져버린다. 그건 그녀의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는다.
거기에 그녀의 그런 신비한 마력에 빠진 소년들은 왜 이리 많은지...
사람의 감정이란, 그 중에서 특히 자존심이란 무서운 것이다. (자존감하고는 좀 다르다.) 이 책에서는 그걸 확실히 보여주었다.
배신을 당했다고 느꼈을때, 버려졌다고 생각했을때, 더 이상 잃을 것이 없을때 그리고 그 사람이 나 아닌 다른 사람을 더 좋아할 때.
그런 경우에 사람들은 예전과 같아질 수가 없다. 그 순간, 뭔가가 안에서 사라지고 새로운 것이 스물스물 퍼져나와 빈그 자리를 차지한다. 그것이 어떤 놈이냐에 따라 사람은 변한다.
이 책에 나오는 사람은 살의를 가졌다. 살의를 가진 사람은 무서운 법이다.
그래서 사건은 천천히 시작되는 것이다. 리세가 어린 시절부터 살아왔고, 그녀의 할머니가 죽은 그 집에서 말이다. 그 집의 이름은 '백합장'. 하지만 사람들은 다르게 부른다. '마녀의 집'이라고.
크리스마스 이브, 화보 촬영을 위해 모인 6명의 여배우들. 순조로울 줄 알았던 촬영은 일이 꼬이면서 늦어지는데...
각 세대를 대표하는 6인의 여배우들이라고 하는데, 어째서인지 모르겠다. 그럼 고현정이 40대이고, 김옥빈이 10대를 대표하는 건가? 그건 아닌 거 같은데. 흐음, 어떤 기준인지는 모르겠다. 그냥 영화라기보다는 강호동과 유세운 그리고 올밴이 빠진 '무릎팍 도사'를 본 기분이다.
적절한 대본과 적절한 연기, 적절한 오바, 적절한 눈물, 적절한 감정 싸움, 적절한 현실 반영 대사 등등.
페이크 다큐를 표방한 영화라고 해야하나? 어, 저거 진짜인가?하는 의심을 불러일으킬만한 설정으로, 실제 상황이라는 생각이 들게하면서, 설마 진짜 저렇겠어? 다 짜고 하는 거겠지라면서 고개를 끄덕이게 만드는 그런 진행이었다.
배우들이 자연스럽게 연기를 잘했거나, 원래 그런 성격들이었거나.
배우들의 원래 성격을 내가 알 리는 없고, 그동안 대중매체에서 그녀들이 보여줬던 - 드라마나 영화가 아닌 인터뷰등에서 보였던 - 모습과 흡사하기에 보는 사람을 혼란스럽게 만들었다.
자연스러운 사람은 뭘 해도 자연스러웠고, 오버스러운 사람은 계속 오버스러웠으며 어색한 사람은 끝까지 어색했다.
마지막 마무리는 뭐, 영화다웠고.
02) 사랑은 진행 중 (The Rebound,2009)
감독 - 바트 프룬디치
출연 - 캐서린 제타-존스, 저스틴 바사
남편의 불륜으로 이혼한 40대 여성과 착하지만 남에게 이용만 당하던 20대 남자의 연애 이야기.
여자는 두 아이를 돌보면서 돈을 벌어야했다. 예쁘고 능력있는 그녀지만, 남편에게서 받은 충격이 컸는지 새로운 남자를 만나도 그냥 그렇기만 하다. 게다가 오랜만에 접하는 회사 생활은 힘들기만 하다.
남자는 사랑이라고 생각했지만, 알고보니 이용당한 것이었고 괜찮은 직장을 구하라는 부모님의 기대는 부담스럽기만 하다. 그가 하고 싶은 것은 따로 있었기에...
우연히 만난 두 사람. 남자는 여자의 아이들을 돌봐주는 보모 역할을 하게되고, 그 와중에 두 사람 사이에 묘한 감정이 싹트기 시작하는데...
영화는 다른 로맨틱 류와 다르게 두 사람이 만나서 사랑하고 결혼까지 골인해서 행복하게 살았다는 식으로 끝나지 않는다.
상처받은 두 사람이 만나서, 서로에게 의지하다가 감정이 싹트지만 각자의 미래를 위해 홀로서기를 한다는 걸로 끝맺는다. 물론 각자의 분야에서 홀로서기에 성공한 두 사람이 다시 만나면서 손을 잡는 걸로 끝나기는 하지만, 그래서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이제 저 두사람은 다시 시작할 거야', 내지는 '그동안 서로를 그리워하면서 열심히 살아왔구나' 등등의 상상을 하게 하지만, 확실하게 보여주지는 않는다.
우연히 둘은 다시 만나고, 언제 그랬냐는듯이 자연스럽게 대화를 나누면서 미소를 짓는다. 마치 오랜동안 헤어진 친구를 만난듯이, 두 사람 사이에 시간은 문제되지 않는듯이, 그동안 떨어져있던 시간이 없었던 것처럼. 그래서 한국 제목이 진행중이었던 건가?
80년대를 풍미했던 가수지만 지금은 그저 그런 신세인 남자. 우연히 떠오르는 아이돌 가수의 곡을 만들 기회를 갖게 된다. 하지만 그의 감성에 맞는 가사를 써줄 사람이 없어서 난감해하던 중, 자신의 집에 화초를 돌봐주러오는 여자가 글에 재능이 있다는 것을 알게된다. 남자는 여자를 설득해서 곡을 쓰기로 하고, 3일 동안 둘은 열심히 곡을 만들기로 한다. 그러면서 여자는 자신의 트라우마를 극복하게 되는데...
휴 그랜트는 여전히 느끼했고, 드류 배리모어는 아직도 귀여웠다.
3일만에 사랑에 빠질 수 있는냐의 문제는 각자 개인 성향에 따른 것이니까 패스. 내용은 음, 다른 로맨틱 영화와 그닥 크게 다르지 않았다.
하지만 작사와 작곡을 통해서 여자와 남자의 차이를 짚어주는 부분은 괜찮았다. 결국 작사와 작곡을 통해서 하나의 노래가 만들어진다는 건, 남자와 여자 두 사람이 서로의 장단점을 감싸주면서 같은 곳을 향해 손을 잡고 나란히 걸어간다는 얘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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